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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영남시대

 

인정할 수 없는 딸의 죽음 - 아버지가 나선 의문의 죽음에 대한 추적 6개월

 

"저는 아들 하나, 딸 셋을 두고 남 부럽지않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정현조입니다.

그러나 이 어찌된 변고인지 98년 10월 16일 학교에 간다고 나간 쌍둥이 딸 중 정은희(19,계명대 간호학과 1학년)라는 딸 하나가 98년 10월 17일 새벽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니 어찌 대성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망한 정양의 아버지의 탄원서 중 일부)

 

지난해 10월 17일 새벽. 남 대구 나들목 화원 방향 250미터지점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와 23톤 덤프트럭 사이에는 여대생 "정은희"가 치어 숨져있었다.

 

경찰은 사고당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하려 했지만 유가족의 강한 이의 제기로 6개월이 지난 99년 4월 현재 재수사에 들어갔다.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의 재수사는 경찰의 무성의한 사고 경위 조사에 맞선 아버지의 눈물겨운 싸움의 결과였다.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은 딸의 죽음 뒤에 놓인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데부터 시작됐다.

 

"귀가를 하다가 시내에서 이런 사고를 당했으면 누가 잘못을 했든 간에 납득이 가련만 인적도 드문 새벽시간에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누가 믿겠습니까? 이래서 저희 딸의 사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혹을 제기하여 범죄 수사를 촉구합니다. 제가 딸의 교통사고에 대하여 의혹을 가지고 있는 점을 말씀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고를 당한 딸은 쌍둥이로서 학교나 이웃이나 가정에 착실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둘째, 성서에 있는 계명대학교에서 7킬로미터나 떨어진 고속도로를 혼자 갈 이유없고 더구나 학교와 저희 집과는 반대 방향인 고속도로를 새벽에 여자의 몸으로 혼자 도보로 갔을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 중 략-

 

여섯째, 사망자는 사망 당시 속옷(팬티, 브래지어, 거들)을 입고 있지 아니하였고 사고 주변에서 팬티와 거들만 발견된 점 등 의문점이 많습니다."

 

(사망한 정양의 아버지의 탄원서 중 일부)

 

사고당시 숨진 정양은 학교축제에 놀러 갔다가 친구들과 주막촌에서 술을 마시고 밤 10시 40분경 박 아무개라는 남자 친구와 함께 나갔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정양의 마지막 모습이 된 셈이다. 그 후 정양은 다음날 새벽 05시 10분경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사건 당시 정양의 주검에서는 속옷(팬티)이 입혀져 있지 않았으며 이 점이 정양의 아버지가 가장 의문시했던 점이다. 정양의 아버지는 영안실에 누워있는 딸의 시신을 본 후 딸의 속옷을 들추어 보고자 했으나 영안실 관리자가 단호하게 막았다고 한다. 영안실 관리자는 속옷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정작 시신의 바지를 걷어 본 결과 속옷(팬티)은 없었다. 이에 정양의 아버지는 시신의 부검을 의뢰하게 되었고 사건의 의문들이 하나 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부검의 '정양이 긴박한 상황에 있었을 것'

 

사고 이틀후 사고지점 주위에는 숨진 정양의 것으로 보이는 팬티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팬티의 상태가 낡고 색이 바랬다는 이유로 숨진 정양의 것이 아니라고 단정했지만 가족들은 틀림없는 정양의 것임을 주장했다. 또한 정양의 것으로 보이는 거들(속옷의 종류)과 가방에선 논흙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유가족측은 정양의 죽음이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 정양 팬티의 감정을 의뢰했고, 부검의의 부검 결과 정양이 어떤 긴박한 상황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양의 아버지 정현조씨는 "딸의 죽음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후 교통사고로 위장되었던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쫓기다가 사고지점인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경찰 초동수사의 소홀에 대한 비난과 유가족의 강력한 항의는 이 사건이 쉽게 종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급기야 지난달 8일자 모 일간지에 이 사건이 일부 소개되었고 초동수사의 소홀에 대한 지적이 제시되었다. 다음날인 4일부터 경찰은 이 사건을 원점부터 재수사키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경찰측 입장에서 본다면 목격자조차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사건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무리수가 따를 수 있다. 또한 정양의 사고가 있기 전 약6시간의 알리바이가 충분히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가족이 제시한 물증만으론 사건을 단순 강간살해로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 경위가 시원스레 밝혀지지 않는다면 재수사는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 정양은 평소 장학생으로 오는 여름방학엔 어학 연수까지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학교와 집외엔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항상 착하고 성실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그런 딸을 영문도 모른채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면 사건 경위가 어찌 되었건 안타깝고 슬픈일이다. 억울하게 죽은 자나,

 

떳떳하게 죽은 자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죽 은자 곁에는 산자가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자의 넋을 고이 묻어야 하는 의무도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합동 참모 본부 앞에는 규명되지 않은 죽음의 진상을 밝혀 달라는 유가족들의 슬픈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정양의 아버지는 살아있는 딸의 미소를 가슴에 새기며 미궁 속의 출구를 찾아다니고 있다.

 

[사회부]

 

<위 사건에 대하여 경찰은 조사 중임을 밝혔다. 경찰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25호 <영남시대>에 경찰의 입장을 게재할 것을 약속한다>

 

※ "그 외 일부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였으나 방송되지 않았습니다."